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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후보들 최악의 경우 교체까지 해야"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심사숙고(深思熟考) 그리고 대오각성(大悟覺醒) 절실

강길모 고문 | 기사입력 2021/12/20 [08:27]

"대권 후보들 최악의 경우 교체까지 해야"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심사숙고(深思熟考) 그리고 대오각성(大悟覺醒) 절실

강길모 고문 | 입력 : 2021/12/20 [08:27]

▲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미디어이슈=강길모 고문] 대망의 2022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연일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뉴스가 전 언론에 도배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수치를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유력 대선후보들에 대한 뉴스들의 대부분은 ‘공정과 정의, 상식’에서 벗어난 후보들의 비루한 이야기들이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거대정당 유력후보들이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허탈하고 어리둥절한 가운데, 양측의 열성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후보에게서 꿈과 용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연일 노심초사하면서 ‘우리 후보님을 지키자’고 아우성들이니, 이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또 있을까요?

 

이런 양상이 계속 확장된다면 필연적으로 여야에서 모두 ‘후보교체론’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보들 중에서, 중도에 ‘후보교체론’에 시달린 경우는 과거에도 제법 있었습니다. 물론 오래전 선거 직전에 돌연사로 유명을 달리한 경우를 빼놓고 후보가 교체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만.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어느 때보다 ‘후보교체론’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양대 후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전들이 너무도 처참하고 격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차선은 몰라도 차악의 선택이 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불행입니다. 굳이 악당들을 대상으로 누가 덜 나쁜가의 싸움을 해야만 할 불가피한 이유가 없다면, 아예 악당을 ‘좋은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오히려 ‘공정과 정의, 상식’에 부합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에는, 경선 막판에 대장동 이슈가 불거지면서 경선 막판까지 한 번도 지지않았던 이낙연 후보에게 마지막 개표에서 의미있는(?) 참패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제법 큰 차이를 보였었기 때문에, 만약 대장동 이슈가 조금만 일찍 불거졌다면 자연스럽게 ‘후보교체’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권에는 상황에 따라 ‘후보교체’의 여운이 어느 때보다 짙게 잠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보교체에 대한 ‘잠재적 요구’가 여권만큼이나 제1야당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외부에서 긴급수혈한 윤석열 후보기에, 시종 정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윤 후보가 ‘김종인-김병준-김한길’ 3김 중심의 캠프를 만들었는데, 김종인씨는 정권교체의 대상인 현정권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분이고, 김병준씨는 현정권의 뿌리가 되는 노무현정권에서 양육된 정치인이며, 김한길씨는 지금 여권의 당 대표를 지낸 분입니다. 

 

정권교체는 곧 ‘사람과 세력의 교체’를 의미하는데, 후보부터 문재인정권의 검찰총장 출신이고 그를 둘러싼 3김이 모두 범여권 사람이라면 정권교체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근본적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상황입니다. 더구나 윤 후보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대통령에게 칼을 휘두른  원죄를 갖고 있다고 일부 보수진영에서 공격받고 있기도 합니다. 오로지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로 ‘정권교체의 희망’이 된 윤 후보이기 때문에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후보교체론’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다 할 것입니다.

 

여당후보인 이재명후보는 네거티브 선거에 관한 한 ‘내성과 생명력’에서 이미 발군(?)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분입니다. ‘욕설 파문’과 ‘여배우 스캔들’ 등, 파괴력에서 역대급에 해당하는 장애물을 딛고 이 자리까지 온 분인지라, ‘대장동’이나 가족문제 등은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주고 있기도 합니다. ‘추진력과 실력’ 등을 명분으로 후보교체론을 잠재울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것이지요. 

 

제1야당 후보인 윤석열 후보는 상대적으로 네거티브에 매우 취약한 후보라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검찰 출신으로 ‘공정과 정의, 상식’을 전면에 내걸고 후보가 된 마당이라 더욱 네거티브에 대한 운신의 폭이 작기도 합니다. 윤 후보 부인이나 장모 등의 문제에 대해, 정치적 접근이 아닌 ‘검사적 접근’을 하다 보니, 사과를 해도 억지로 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합니다. 

 

윤 후보가 이재명 후보처럼 능수능란하게 변명하고 표정관리 할 수 있다면, 또 그것은 ‘윤석열의 정치적 상징’에 위배되는 것이니, 비교적 작은 현안에도 상처 부위가 커지는 모습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말처럼 ‘환장’할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홍준표 이낙연, 두 분이 2022년 신년 운세로 ‘후보교체론’의 향방을 점쳐보는 것이 헛된 망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이낙연 전 총리는 이재명 후보를 둘러싼 추문들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입니다. 늘 그랬던 자신의 스타일대로 은인자중하는 모습이지만, 대장동 문제 등에서 이재명 후보가 중상을 입게 된다면 언제든 ‘구국의 결단’(?)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언감생심 ‘후보교체론’의 확장을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윤석열 후보의 노동이사제 정책’에 대한 즉각적 태클(tackle)입니다. 언론에 스치듯 지나간 사례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윤석열 후보에 대한 홍준표 전 대표의 공격 중 가장 날카롭고 서슬 퍼런 대목입니다.

 

‘노동이사제’를 언급한 윤석열 후보가 사전에 얼마나 고민을 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윤 후보가 보수정당 입문 초기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년)’을 거론하며 ‘자유 시장경제주의자’임을 내세워 보수 대권주자임을 강변했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노동이사제’에 대한 언급이 느닷없다는 느낌이며, 보수지도자로서의 철학적 정체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눈치 빠른 홍준표 전 대표가 결코 놓칠 리 없는 대목이었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후보가 ‘노동이사제’를 언급한 배경에는 ‘김종인 변수’가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김종인씨는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초지일관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와 비슷한 얘기를 주장해온 사람입니다.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가 바로 그것입니다. 

 

복잡한 얘기지만 간단히 짚어보면,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은 정부가 질서자본주의 틀 안에서 시장경제에 대해 ‘반독점’ 등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며, 경영에 대한 노동의 부분적 참여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종인씨는 노동대표의 경영참여 필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에 비춰보면, 윤석열 후보가 김종인씨를 선대위 수장으로 모시면서 ‘프리드먼’을 버리고 ‘오이켄(Walter Eucken, 1891~1950년)’으로 갈아탔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복잡한 얘기를 한마디만 부연하면, 김종인씨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김씨의 ‘경제민주화론’은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론이 아니라, 독일 계급정당이 주장했던 ‘사회주의형 경제민주주의론’이라고 규정하고, 지난 30년간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한국경제의 활력을 훼손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김종인씨의 주장이 오이켄류의 질서자유주의 계열이 아니라 사회주의 아류라는 비판입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굳이 윤 후보의 ‘노동이사제’ 발언에 대해, 비교적 장황하게 독일식 노동이사제가 경영참여가 아닌, ‘감독이사’에 한정된다고 지적하면서 윤후보를 공격한 것은 결국 윤후보가 ‘보수 리더’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보수철학과 거리가 있는 사람이 지지율마저 떨어진다면 ‘후보교체론’은 단 시간 내 폭풍이 될 수도 있음을, 다른 사람도 아닌 홍준표라면 누구보다 빨리 눈치 채고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 (固所願)하지 않겠습니까.

 

여야 거대정당에서 엄정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선후보들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할 축제의 장인 대선국면이 분노와 한탄으로 점철된다면,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드세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안철수, 심상정 등 정상적인 정당의 제3후보들도 아닌 허경영 후보까지 나온 것은 분명 불편한 진실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21년을 마감하면서, 그리고 대망의 2022년을 꿈꾸면서 희망보다는 절망과 후회를 예감케 하는 현재의 대선국면은 과감하게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후보교체가 능사란 말은 아닙니다. 바꿔봤자 더 나쁜 ‘악마’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후보교체론에 따른 국가적 소모전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그 최우선적 책임이 유력후보들에게 있음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실현과정에서 ‘절차’는 목적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지만, 아무리 정상적 절차를 거쳐 후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후보교체’ 역시 정상적 절차를 거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래서 공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양대 유력후보들은 두렵게 여겨야만 할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판에 박힌 이벤트성 나들이에 끌려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리거나, 구색을 맞추려고 가는 곳마다 이율배반적 공약들을 남발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짐을 싸들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자신부터 냉정하게 돌아보고, 진정으로 이 나라와 국민들의 현실과 미래에 절실하고 간절한 의제들부터 다시 한 번 숙고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2022년에 홍준표, 이낙연이라는 이름이 재소환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대한민국에 득보다 실이 크다 할 것입니다. ‘가족 리스크’니 뭐니 하는 허접한 흠집내기 싸움에 매몰되기보다 통 큰 눈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능력 우선의 ‘나쁜 남자’를 가려보는 것이 보다 현명할 수 있으며,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 책임도 유력후보들에게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면, 난장판 대선판을 만든 주범으로서 유력후보들은 비상한 책임에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연일 불거지는 악재들에 하루살이 대응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난장판 극복을 위한 초보적 신사협정은 물론 최악의 경우 ‘후보 교체’까지 포함하는 근본적 대전환의 계기도 불사해야 할 어지러운 대한민국입니다. 

 

2022년을 맞는 국민들의 가슴에 절망보다 희망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원하기에, 난장판 대선국면의 유력후보들이 스스로 그토록 사랑한다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위해 심사숙고(深思熟考)하고 또 대오각성(大悟覺醒)하기를 촉구하고 또 촉구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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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이 2021/12/20 [13:10] 수정 | 삭제
  • * 20대때 박정희 비밀보좌역이 되어 각종 정책에 기여한 허경영 - 정책능력을 가늠해봄 * 삼성 이병철회장의 양아들이 되어 반도체 산업 시작에 기여한 허경영 - 경제능력을 가늠해봄 * 월남참전 유공자 허경영 - 나라사랑을 가늠해봄 *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야간으로 다님 낮엔 일했던 허경영 - 자기사랑을 가늠해봄 * 빚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를 생각해 양적완화하여 18세이상 1억원지급, 마중물을 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허경영 - 국민사랑을 가늠해봄 * 제일 중요한 33년전에 미래를 내다보고 만든 33가지 정책 (시스템화된 정책) - 미래를 가늠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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