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초보 윤석열, 최재형 잡는 고수 이준석,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가 문제"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1/08/12 [07:41]

"초보 윤석열, 최재형 잡는 고수 이준석,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가 문제"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1/08/12 [07:41]

▲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미디어이슈=박종완 기자] 바야흐로 대선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여야 정치권에서 수십 명의 대선주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으니, 언제부터 이렇게 대한민국 정치권에 대선주자급 인재들이 넘쳐났던 것인지 감개무량할 일입니다.

 

대선 레이스에 뛰어 든 주자들이 대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이거나 나름 정치적 이력을 쌓아왔던 분들이 대부분인 데, 야권의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은 현 정권 고위 공직을 그만두고 곧바로 대선에 뛰어든 ‘정치 초보’지만, 유력주자로 대접받고 있어 주목됩니다. 

 

사실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이란 직위에 있던 사람이 곧바로 대선에 뛰어드는 것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검찰총장 출신의 대선주자 직행은 그만큼 이 나라의 법치와 법적 정의가 형편없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유지한다면 그만큼 현 정권이 법치와 공정, 정의 차원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현 대선판에서 재미있는 쪽은 여권보다 야권인 듯합니다. 여권에서는 이재명-이낙연 두 후보간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 동안 보아왔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행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선국면에서 ‘검증이냐’ ‘네거티브냐’를 놓고 싸웠던 장면도 꽤 익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만 얘기하자면, 아무리 네거티브의 부작용이 크다 해도 그 이유로 ‘검증’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근거가 있다면 정당한 검증이요, 근거가 박약하다 해도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대선주자의 능력 검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거티브’를 내세워 세세한 검증과제를 회피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재명 지사가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한 것은 사실상 치열한 검증을 회피하려는 꼼수로 의심될 여지도 많습니다.  

 

여권과 달리 야권 대선판이 재미있는 것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행보가 유력 야권주자들과 의미심장한 갈등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중진인 정진석의원이 윤석열 전 총장을 ‘돌고래’로 비유하고 나머지 대선주자들을 ‘고등어, 멸치’ 쯤으로 폄하하면서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이준석 대표가 발끈하는 모습입니다. 

 

정치판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꾼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준석대표의 ‘공정한 대선관리’ 주장이 사실상 토론에 능숙한 유승민의원을 돕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의도가 무엇이든 객관적으로 보면 이준석 대표의 대선관리 프로세스엔 크게 시비할 대목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정치초보’라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윤석열, 최재형 두 주자들의 입장에선, 당에서 ‘예비주자 토론’을 조기에 밀어붙이는 것 등이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돌고래급 주자와, 그 주자의 대안으로 부상한 유력주자가 ‘멸치’들과 경합하는 것도 내키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그 ‘멸치’들이 토론 배틀에서는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라면 더더욱 달가울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전 총장의 호위무사격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의 ‘대선 경선후보자 토론회’ 조기 강행에 대해, 경선준비위가 아닌 경선관리위에서 토론회를 해야한다고 반발했지만, 정당의 존재의미에 비춰 속이 보이는 어설픈 항변일 뿐입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경선과정에서 공천과정에 ‘시험’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국민의 참정권 침해요 민주주의 파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민주주의 정당론의 ABC를 왜곡했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일종의 ‘정치 망언’이었습니다.   

 

무릇 정당의 목적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고, 정당이 행사하는 권력쟁취의 수단은 ‘공천’입니다. 공직후보 추천(공천)은 정당의 제1기능이고 존재의미입니다. 개별 정당이 공천과정에서 시험을 보든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좋은 후보’ 선별을 위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수단을 사용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그 정당의 자유요 또 의무의 영역에 속합니다. 

 

선거가 아니라 시험으로 선출직을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껏 정당 내부에서 공천심사의 수단으로 시험을 본다는 것이 국민주권 침해라니 참으로 황당무계한 발언입니다. 어린이 정치교육상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인데, 어떤 언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니 그것 참……

 

미국 하버드대학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가 공저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의하면, 극단적 포퓰리스트들이 등장하는 민주주의 붕괴 조짐의 명백한 신호는 정당이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거르기 기능(gatekeeper)이 약화되면서, 극단주의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들이 알게 모르게 민주주의를 파괴해왔다는 분석인데, 100% 공감할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정당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벌어질 민주주의의 위협에 대한 분석은 충분히 경청할 대목이 많다 할 것입니다

 

제1야당의 대표가 정당 본연의 책임과 기능인 ‘공천과정’에 충실하겠다는 데, 어떤 이유로도 이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이준석 대표는 명분을 앞세워 정치초보 유력주자들을 제대로 길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정당이라는 울타리에서 이준석 대표에 휘둘리는 윤석열, 최재형 두 유력주자들에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이준석 대표보다 ‘정치 하수’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정치 화법(話法)’을 비롯한 전반적 정치 행태에서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혁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치는 분명 시대적 흐름에 부응할 정치문화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야의 일부 대선주자들이 메타버스(Metaverse)에 유세장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디지털 정치가 복잡한 하드웨어를 수반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지만, 일단 시급한 디지털 정치문화의 핵심은 ‘소통의 직접성’을 꼽고 싶습니다. 

 

정치권에 입문하자마자 대변인부터 임명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정치 측면에서 하수들의 전형적행보이자 국민에 대한 결례라 할 것입니다.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입당과 동시에 소속 전현직 의원들을 불러모아 세대결 행태를 보이는 것도 참으로 가소로운 행보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차기 지도자란 사람들이 어중이 떠중이들을 몰고 다니고, 대선 주자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대변인들이 나서 설쳐대는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현실정치인들의 닳고 닳은 화법이 아닌, 거칠고 투박하면서 때론 엉뚱하다 해도 싱싱한 ‘쌩말’(쌩얼의 얼굴을 말로 바꾼다면)을 더욱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SNS등을 통해 언제든 자신의 말을 직접화법으로 전달하려는 이준석이 윤석열, 최재형보다 훨씬 고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치 밖에선 천하의 고수로 행세하던 분들이 정치권에 들어와 낮은 자세와 배움을 자처하는 것은 기특한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가 진정성을 갖추려면, 일단 대변인단이니 공보단이니 하는 것들부터 청산하기 바랍니다. 이리 저리 자문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가까이 하는 것은 좋지만, 벌써부터 무슨 벼슬이나 나눠준 것처럼 kitchen cabinet 비슷한 것을 언론에 공표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꼴불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라리 shadow cabinet을 제시한다면 그나마 봐 줄 수도 있지만……

 

첨예한 국익의 선두에 선 대통령의 모든 언행은 ‘관리’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꿈꾸는 예비주자들이 벌써부터 ‘관리’를 자청해서는 국민들이 난감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측근들의 잔재주가 아니라 지도자 본인의 역량과 철학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나서 선택하기 원합니다.

 

윤석열, 최재형 두 사람이 야권의 대선주자로서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한다면, 자잘한 말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SNS를 통한 ‘감성팔이’를 직접 소통이자 디지털 정치라고 오해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반대 진영에서 말꼬리 잡을 ‘껀수’에 눈이 벌개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화려한 레토릭보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그 무엇이 있는지 절박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선주자는 구체적 정책의 디테일에서 조금 부족하다 하여 근본적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된 백신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접종 예약’을 하라는 이 정부의 주문에 순한 양처럼 응하고 있는 국민들을 보면서 대선에 나선 분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 잘난 K방역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절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북한 김여정의 한마디에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요구하는 국회의원이 무려 70명을 넘기는 이 나라의 행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요? 

 

시장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무지와 착각이 빚은 소득주도성장론이나 부동산정책 파탄에 대해 얼마나 나름의 원칙과 대안의 철학을 갖고 있을까요?

 

폭증하는 복지의 요구와 적정한 예산의 조화를 가능하게 할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줄 대선주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포퓰리즘을 걱정하면서도 선거판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주자들 속에서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과 금도를 보여줄 후보는 과연 있을까요?

 

이런 모든 의문과 기대에 대해, 대선주자라면 성실하고 솔직하게 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철학에 기반한 자신만의 목소리여야 합니다. 측근들에 의해 ‘관리된 상품’으로 평가 받고자 한다면 일찌감치 도전을 멈추길 권합니다. 그런 식의 지도자에 의한 폐해를 이미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벌써부터 직접화법을 꺼리고 측근들에 묻혀 민낯을 숨기고자 한다면, 그런 주자들은 일찌감치 귀가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며,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코로나 위기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태도라고 넌지시 귀띔하고픈 오늘입니다. 

 

 

 

 

 

박종완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