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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켈레의 성공과 윤석열의 실패. . . ‘법조인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의 딜레마

강길모 고문 | 기사입력 2025/01/14 [06:26]

부켈레의 성공과 윤석열의 실패. . . ‘법조인 윤석열’과 ‘대통령 윤석열’의 딜레마

강길모 고문 | 입력 : 2025/01/14 [06:26]

▲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미국 대선이 끝난 이후 당선자인 트럼프보다 더 주가를 떨치고 있는 인물이라면 단연 일론 머스크를 꼽아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구성할 차기 정부에서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으로 임명된 머스크는 연방정부 예산의 3분의 1을 줄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자신과 일하게 될 정부효율부 공무원들을 실리콘밸리 임원들로 충당하되, 무급으로 주당 80시간씩 근무하게 만들 모양입니다.

 

머스크는 비단 미국만을 휘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엔 독일 총선판에 뛰어들어 독일극우당인 독일대안당(AfD)를 적극 지지함으로써, 머스크 덕분에 그 정당의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고 합니다. 유럽 좌파 정당들은 머스크의 자충우돌이 못마땅해 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억만장자 괴짜에 망상에 가까운 공상가로도 유명한 머스크가 과거부터 최근까지 꽂힌 인물이 하나 있어 화제인데, 그는 바로 엘살바도로의 젊은 독재자(?) 나이브 부켈레입니다. 머스크야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 차치하고, 부켈레는 오늘 우리가 한번쯤 주목해 볼 인사가 아닐까 합니다.

 

엘살바도로 대통령인 부켈레는 작년에 재선에 성공하였고, 2019년부터 엘살바도로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는 수차례 비상조치를 2년 이상 동원하면서 강력한 공권력으로 갱단 조직을 척결, 지구촌 최저수준의 엘살바도로 치안을 급격하게 개선했고, 정부 주도의 인프라 건설 및 투자 유치로 제법 탄탄한 경제적 성과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부켈레는 엘살바도로 물론 지구촌을 대표하는 강경우파 지도자모델로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켈레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만만치 않은 암운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갱단 척결을 비롯한 치안 확보 명분으로 무려 전 국민의 1% 이상이 현재 감옥에 갇혀있다고 합니다. 비상조치를 바탕으로 영장없는 체포 구금 과정에서 엘살바도로 성인남자의 3%가 감옥에 있다 하니, 그 중 상당수는 억울하게 체포된 사람도 많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전두환 국보위가 1980 삼청교육이란 이름으로 6만여 명을 영장없이 체포해 3천여 명을 감옥으로 보내고, 17000여 명은 훈방, 나머지 4만여 명은 군부대로 끌려가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습니다. 후일 전체 피검자의 3분의 1 이상이 무고한 일반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니, 치안 확립을 내세운 독재정권의 막가는 행태로선 엘살바도로 부켈레의 가까운 선배였던 셈입니다. 물론 부켈레의 경우, 전 국민의 1%가 훨씬 넘는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냈으니 이는 전두환 국보위보다 상대적으로 200배가 넘는 위력을 과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살바도로 하면 1993년 헐리웃 영화 로메로에서 소개된 로메로 대주교가 기억됩니다. 1980년대 군사정권 치하에서 엘살바로도에선 7만 여명의 국민들이 학살되었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로메로 대주교는 미사 도중 살해됩니다.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들판에 쌓여있는 수십 수백구의 시체들과 그 밑으로 새어 나온 핏물이 작은 하천을 이루는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험난한 과정을 통해 내전을 딛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가동해 온 엘살바도로가 인구 10만명당 살인율 105.2건으로 세계 최악의 치안상태에 놓였던 것은 엘살바도로 성인남자 중 3~4%가 범죄조직원이었던 탓이습니다. 현 대통령인 부켈레는 비상조치와 군대를 동원해 이러한 범죄조직원들을 대거 체포 구금함으로써, 현재 엘살바로도 살인율은 10만명 당 2건 안팎으로 떨어졌고, 하루 60건 이상 발생하던 살인사건이 작년 12월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하니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스크가 이를 두고 미국도 이렇게 할 수 있다며 엘살바도로 치안상황 개선을 극찬한 것도 충분히 공감할 대목입니다.

 

부켈레가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정권보다 치안 명목의 불법적 체포구금에서 수백 배의 위력을 보여줬지만 그의 업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헌법재판부 판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새로 임명해 대통령 연임금지조항을 멋지게 돌파한 것도 그의 빛나는 작품입니다.

 

엘살바도로 헌법에는 6개월 이상 재임시 10년 이내에 다시 출마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있었지만, 그가 새롭게 임명한 대법원 헌법재판부 판사들은 6개월 휴직하면 재선이 가능하다는 희한한 법리를 들고 나와 부켈레의 재선을 정당화했습니다. 애초 엘살바도로 헌법이 연임은 안되지만 중임은 가능하다는 것이어서 부켈레는 재임 중 갑자기 6개월을 휴직하고 재선자격을 취득하는 편법을 구사했습니다.

 

이러한 부켈레의 성공신화는 서구 민주주의 선진국가들에게는 고민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미 최고수준의 치안확보와 정부주도 경제성장 성과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인권유린의 혐의가 명백한 초법적 독재권력모습까지 마냥 박수를 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머스크의 칭송과 더불어 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취임식에 우선적으로 초대받은 국가원수 중 하나인 부켈레가 성공신화를 누리고 있는 강경 우파 지도자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오늘 우리가 부켈레의 성공신화를 돌아보게 되는 배경에 우리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참담한 모습이 오버랩 되는 탓이라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계엄과 비슷한 비상조치를 2년 이상 끌어가며 무자비한 체포 구금으로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명백하게 연임을 금지한 헌법을 우롱하며 당당하게 재선에 도전해 권력을 이어간 부켈레가 만약 대한민국에서 그처럼 행동했다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내란 수괴 중의 수괴몰매를 맞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서울시 인구에도 미달하는 작은 나라, 민주주의 역사와 나라 사정이 다른 점을 간과하고 대한민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 무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부켈레와 윤석열의 근본적 차이가 무엇인지 비교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없지 않을 듯합니다. 먼저 최대한 윤석열의 입장에서 비교하면, 일단 부켈레는 명백한 헌법규정을 말도 안되는 편법으로 우회하며 사실상 헌법을 유린했지만, 윤석열은 말 그대로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했을 뿐입니다. 계엄이 필요한 비상상황에 대한 상황인식과 헌법 법규 해석상의 문제가 있을 뿐, 헌법 자체를 유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윤석열의 입장이고, 나름 타당한 대목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윤석열의 입장에서는 국회권력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불순세력들이 무분별한 탄핵과 단독, 졸속 입법으로 국가기관과 국정을 무력화시키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것이 헌법상의 권한에 의한 것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으로 맞서겠다는 것이 뭐 그리 잘못했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정치에 입문하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검찰 시각의 법규정과 형식논리에 묻혀 살아 온 법조인 윤석열의 입장이기에 충분히 계엄이라는 가미가제식 도발이 가능할 수도 있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부켈레의 헌법유린은 윤석열에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항임에도, 부켈레는 스스로 철인왕(Philosopher King)이라고 자부하며 유유히 백악관에 놀러 갈 때, 윤석열은 체포 영장을 모면하려 안쓰러운 몸부림을 하고 있으니 당사자로선 참 억울할 듯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두 사람의 근본적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해당 국가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민주주의 수준에서 그렇게 극명한 차이가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윤석열 대통령이 재임 중 가장 우습게 넘겼던 지지율문제의 알파-오메가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부켈레는 지난 대선에서 거의 9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엘살바도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는 부켈레가 계엄을 하든, 헌법을 우롱하든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 결정적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적어도 민초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면, 민주주의도 인권도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단 엘살바도로 국민들만의 특징은 아닐 것입니다.

 

부켈레의 경우에 비춰볼 때, 만약 윤석열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넘고 있었다거나, 최소한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받았던 지지율이라도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의 위대한 결단(?)이 이토록 참혹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호언한 것이 꼭 잘못된 태도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여론조사로 측정되는 지지율을 실체라고 볼 없으며, 지지율이란 측정 시점의 흐름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그 흐름이 취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하향 일변도였고, 그 바탕에는 체감할 수 없는 민생 개선 노력, 부인 등을 둘러싼 고약한 잡음들, 국민들과의 빈약한 소통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지지율은 명백한 실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요약하면, 내란 수괴 윤석열은 억울해 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이 과연 법리적으로 옳은지 그른지 따져볼 필요도 없고, 공수처가 수사권이 있든 없든 법원이 발부한 체포 영장을 피할 명분도 다는 것입니다. 헌법이나 관련 법규상으로는 쟁론의 여지가 충분하고 넘치지만, 미안하게도 지지율로 표출되는 국민법 때문에 그 모든 하위 법령 따져볼 의미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법치 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때문에 법치 민주주의 공화국민으로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법치 민주주의 공화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법조인 윤석열이 아니라 대통령 윤석열에게는 분명 다른 우선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헌법보다 우선하는 국민법이며, 국민법의 실체는 지지율로 표출됩니다. 국민법은 광장법이나 떼법과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법조인 윤석열에게 이런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게 보여질 것입니다. 어떻게 대중주의가 헌정질서에 우선하며, 헌법보다 국민법이 우선할 수 있느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법이란 것이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포퓰리즘과 유사한 것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대통령의 권력이 명목상 헌정질서가 아닌 국민법의 질서에서 실질적으로 부여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통령 권력 자체가 포퓰리즘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미안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보다 훨씬 말랑말랑한 이유로 탄핵되었습니다. 그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관련해 회자되었던 온갖 소문들이 현시점에서 거의 허위사실로 판명되었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몰락 과정에서 헌법을 압도했던 국민법의 위력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따지려 하지 않습니다. 박근혜에 대한 헌재의 결정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법에 대해 초짜라도 상당부분 법리보다 정치적 재량이 앞선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그 것이 현실정치적 섭리라고 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요?

 

법조인 윤석열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대한민국을 위한다던 자신의 결단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우습게 만들어버린 이 엄청난 과오부터 진심으로 반성해야 옳습니다. 빈약한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감히(?) 계엄을 들고 나온 것은 명백한 국민법 위반이기 때문에 어설픈 헌법논리로 항변하려 해서는 곤란합니다. 법조인 윤석열의 눈에 온갖 가짜뉴스들이 판치고, 종북세력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만 날뛰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국민법을 경시한 대통령 스스로 그러한 분위기를 자초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법조인이 아닌 대통령 시점을 갖췄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법조인 윤석열이 아닌 대통령 윤석열국민법을 경시함으로써 자신이 축출하려 했던 친북-친중주의 패거리들에게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반성하고, 무조건 국민 앞에 엎드려 석고대죄해야 합니다.

 

대통령 윤석열먼저 국민법 위반을 인정하고 엎드려야만,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차분하게 국민법 하위의 헌법과 형법의 위배 여부를 따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라도 해야만 엉망진창이 돼버린 대한민국이 그나마 차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강력하게 외치고 싶은 오늘입니다.

 

(* 최근 윤석열 지지율이 40%에 육박하고, 일부 조사에서는 40%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이 것이 윤석열 결단의 충정에 뒤늦게 국민들 일부가 공감하게 된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계엄에 대한 국민법태도 변화가 결코 아니며, 오로지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천하가 일찍 도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일부 국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적극 의사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이재명 사법리스크에 따른 조급증으로 헌재 탄핵심판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것도 비슷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착각 금지!)

[미디어이슈=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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