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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 포천 박물관 설립을 기대하며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4/04/16 [20:33]

기록의 힘, 포천 박물관 설립을 기대하며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4/04/16 [20:33]

▲ 이지상 작가



[미디어이슈=박종완 기자] 꽃은 피우는데 일 년이 걸리고 나무는 숲을 이루는데 삼십 년이 걸립니다. 사람을 키우는 데는 백 년이 걸립니다. 저는 늘 꽃을 많이 키우는 마을을 상상해 왔습니다. 꽃이 없는 마을에서 어찌 숲을 기약할 수 있으며, 나무 하나 키우지 못하는 마을에서 어찌 사람 하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저는 낭창낭창 꽃비를 내리는 봄나무 아래서 이 글을 씁니다. 벚꽃은 절정을 지났습니다. 가지의 매듭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은행잎의 새순은 연두입니다. 은행나무의 거친 껍질은 태어날 때부터의 것 그대로입니다. 

 

몇 살이냐고 묻지 못했습니다. 나보다 적어도 몇 백 년은 나이가 많을 겁니다. 간간이 꽃바람 탄 꽃잎이 은행나무의 옹이 위에 내려앉습니다. 아주 오래된 나무의 상처를 감싸 줍니다. 봄꽃이 날아와 가을나무의 안녕을 기원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저도 가만히 손을 뻗어 나무의 본체 위에 올려놓습니다. 

 

당신들을 기억하는 박물관이 만들어진답니다. 그곳에서는 당신들뿐만 아니라 나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바위들과 태곳적부터 불었던 바람과 그것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모두 기록될 겁니다.

 

일 만 년 전 고인돌 아래 사랑하는 가족을 묻었던 여인네는 어떻게 슬픔을 가누었을까요. 삼 천 년 전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던 손끝은 지금의 저와 어떻게 다를까요. 서기 396년 마홀(馬忽)이란 이름을 얻었던 그때, 포천에 살았던 사람들은 포천의 역사를 알아가는 저만큼 감격해 했을까요. ‘기억의 힘은 강하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흐려지고 각색되고 이내 잊혀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간들의 한 생이 그랬습니다. 하여 박물관이 생긴다는 것은 제 어머니의 한 숨을 기록하는 일이고 저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낳은 할머니와 그 위와 그 위의 삶들을 영원한 것으로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저와 저의 벗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남겨놓을 흔적들도 기록할 것입니다. 김대성이 석굴암을 축조하는데 20년이 걸렸고, 이름 모를 석공이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가지정문화유산)을 완성 하는데 37년이 걸렸다면 드디어 건립되는 포천 박물관은 일만 년이나 포천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 만들어낼 가장 값진 유산으로 기록 되어야 합니다.

 

“모든 풍경이 계획되어 있었던 듯한 위엄있는 조각 작품의 작가는 따로 없다. 30여 년을 스쳐 지나간 바람이 작가이고 하루도 빠짐없이 절벽을 비추던 태양이 작가이고 무엇보다 이 바위에 생계를 의지하고 한결같이 돌을 쪼아댔던 수많은 채석공들의 땀과 눈물이 작가이다. 천주호를 인공호수라고 말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이유는 누구라도 의도해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이라는 작가의 수고가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 도슨트 - 포천』 중에서 -  

 

포천 박물관이 들어설 포천 아트밸리에 대한 소견을 이렇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 눈 녹은 물이 흘러 작은 폭포를 만듭니다. 에메랄드빛 파문이 호수에 일면 일급수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물고기들이 파닥입니다. 절벽 위에 위태롭게 자리를 잡은 소나무들은 종달새들의 쉼터입니다. 

 

하늘빛과 물빛이 닮았고 바위 위에 세월이 채색한 수묵의 빛깔이 은은한 아트밸리는 제가 아는 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예술품이고 돌의 결과 노동과 세월의 흔적이 빚어낸 빛나는 상과입니다.

 

 어느 시인 묵객이 만취해서 내뱉은 시 한 줄이, 어느 가객이 흥얼거리던 노랫가락이, 포천의 하늘 아래 부끄러웠던 삶을 고백하며 무릎 꿇는, 포천을 살았던 평범했던 이들과 포천을 살아갈 평범한 이들의 모든 것들이 ‘포천 박물관’의 한켠에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봄꽃이 내려앉아 나무의 옹치를 감싸는 것처럼, 한때는 상처였으나 거대한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난 아트밸리처럼 포천을 살았던 모든 자연과 사람들에게 ‘포천시립박물관’의 이름이 큰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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