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분쟁, 명분이 있다고 좋은 정책은 아니다"

의료사회주의인가, 공공의료 확대인가

박종완 기자 승인 2020.09.13 16:37 의견 0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대한민국에서 의사들이 국민건강을 볼모로 집단 파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세 번째라고 합니다. 그 첫 번째는 1999년~2000년 사이에 이른바 ‘의약분업’ 문제로 전국의 의사들이 들고 일어났었고, 두 번째는 2014년 ‘원격 진료’ 문제로 의사들의 총파업이 있었으며, 이번이 세 번째인 것이지요.

의약분업 때도, 원격진료 문제도, 그리고 이번 의료파동도 그 근본에는 ‘돈’문제가 핵심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할 것입니다. 국민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의사들의 파업은 그래서 늘 일반 국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갖가지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선 가장 먹고 살만한 직군인 의사들이 ‘밥 그릇’ 지키겠다고 환자들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선다는 것이 예쁘게 보일 까닭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번에 문재인정부가 의료파동의 동기를 제공했던 의료정책은, ▲의대 정원 10년간 연 400명 확대, ▲공공의대(원)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원격진료) 육성 등 네 가지가 쟁점입니다. 의사들은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특히 정부가 기존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국가 주요정책을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로 추진하는 것을 더더욱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의사들은 이 정부가 무리하게 관련 정책을 밀어붙이고자 나선 배경에 코로나 위기국면에서 의사들의 집단 반발과 단체행동이 결코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약삭빠른 계산이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역설적으로 코로나 정국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들은 지난 총선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공공의료 확대 정책’까지도 코로나 국면에서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이 정부가 했었다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국민건강을 볼모로 한 ‘밥그릇 싸움’으로만 몰아갈 수 없다 할 것입니다. 

의사들이 내건 명분(속내는 밥그릇 지키기인지 몰라도)은, 오히려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잘못된 의료정책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공공의료의 사각지대 보완책이 아니라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전체적 질만 떨어뜨릴 뿐이라는 것이 의사들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인기도에 따른 진료과목별 의사 숫자의 불균형,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서비스 격차 등등)을 보완하고 개선하기 위해, ‘공공의료 분야’를 집중 육성시켜서 그 문제점들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에는 별로 흠잡을 구석이 없어 보입니다. 기본 방침은 이해되지만, 문제는 그 대안으로 제시된 정책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추진방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견해차이가 의-정 충돌의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일단 정부와 의사단체가 문제가 된 정책들을 유보하고 의정간 논의구조를 만들어 차분히 접점을 찾아가겠다고 합의하면서, 큰 불씨는 껐지만 의정충돌은 내용적으로 이제부터가 시작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의사 숫자가 충분한가 아니면 모자란 것인가에 대한 원론적 쟁점부터, 공공의료의 사각지대 보완에 공공의대 설립이 과연 유용한 방안인가, 한방 첩약의 과학성과 안전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원격진료의 부작용은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과연 이 정부와 의사들이 대화를 통해 합의점이나 절충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단순히 OECD국가들의 국민 1000명당 의사 숫자를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평균보다 아래인 것은 분명하지만, 외래진료를 통한 의사 대면 횟수나 병상 확보 숫자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의사 대면진료 시간이 평균 3분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에 횟수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대표적 공공의료 국가인 영국 등에서 의사를 직접 보려면 길게는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와 비교하면 마냥 평가절하할 일도 아닙니다.

확대된 의대정원으로 공공의대를 만들어서 일반 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과목이나 연구분야에 투입하고, 10년간 지방근무를 의무화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사각지대를 보완하겠다는 방안을 두고도 의사들은 정부 정책이 부작용과 역기능만 양산해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의대 입학생을 지자체장과 시민단체가 추천한다는 구체적 방안을 놓고는,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공식화하겠다는 노골적 처사라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지역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고자 한다면, 최우선 과제가 지방에 질 좋은 병원부터 만들어야 함에도 병원 만들기에 대한 예산은 1도 없는 상태에서,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여 공공의대 입지부터 서둘러 결정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선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는 항변에는 나름 설득력이 없지 않습니다. 

정부와 의사단체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진심으로 대한민국의 의료체계 발전과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대안 마련에 머리를 맞댄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험악할 필요도 없었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꼬이고 악화되었던 것일까요?

가장 우선적으로 이 정부에 먼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정책이든 그것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집행의 걸림돌에 대한 사전 설계와 정지작업이 긴요합니다. 15년째 동결되었던 의대정원을 대폭 확대한다면서 예상되는 저항에 대해 이렇다 할 설득장치나 노력도 없이, 180석 권력정당의 위력과 코로나 국면을 핑계로 어물쩍 넘기려 한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정부의 전략부재요 정책능력 미달로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공공의대 설립을 이미 특정지역 두 곳에 기정사실화한 것이나 입학생 처리방안에서 시민단체 추천 운운하는 잡음이 초래된 것도 스스로 정치적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킨 처사였습니다. 안 그래도 현 정부의 의료정책 입안자들이 ‘문재인 선거캠프’에서 활약했던 K모씨 그룹의 ‘의료사회주의자들’이라고 의심하고 있는 의사들에게는 ‘결사항전’의 비장함까지 동원하도록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입니다.

코로나 위기국면에서 환자들을 팽개치고 거리로 나선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어떤 변명으로도 감싸주기 어렵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 등을 통한 공공의료 보완론이 국민 이익 우선의 입장에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도 아닌 것이고, 디지털 기반의 4차산업 혁명의 시기를 살아가면서 비대면 원격진료 문제를 마냥 제쳐두고 있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의사들도 마땅히 현 의료체계의 문제점들을 개선, 발전시켜나가는데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옳을 일입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집단답게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정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의료보험 비급여 축소 등 이른바 ‘문캐어’ 정책으로 인해 건보재정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취약한 의료재정을 고려해 볼 때, 과연 이번에 추진하려는 정책들이 국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개선 노력인가, 아니면 포퓰리즘이나 ‘의료사회주의적 접근’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인가는 판단하기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정책을 둘러싸고도 정치적 또는 이념적으로 편가르기가 진행되고, 그래서 불신과 증오를 앞세워 각 각의 장점과 단점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돌아가서는 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부 정책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의사들이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고, 졸속 정책으로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우려와 경고를 정부는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의 힘’으로 이름을 바꾼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차원의 의료정책 논의기구 구성을 제안한 것도 여당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어차피 정부여당과 의사단체간 접점 마련이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야당의 가세는 나름 극한 대립의 여지를 줄여갈 ‘완충카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3권 분립’의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현 집권세력은 권력집중 측면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자세를 낮춘다고 해도 ‘독선과 오만’으로 오해받기 쉬운 처지에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뜬금없이 국민들을 ‘위로’한답시고 안 그래도 국가재정이 심각한 상황에서, 통신비 2만원을 선심 쓰듯 뿌려대는 자세로는 국민으로부터 근본적 신뢰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부와 여당은 깨닫기 바랍니다. 정성을 보이고자 한다면, 국민세금으로 선심 쓸 것이 아니라 제 주머니들을 털었어야 말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의료체계 정비문제도 정부 여당이 그와 비슷한 정신자세로 손댄 것이라면 의사들이 아니라 온 국민의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각성하기 바랍니다. 어느 정책이든 그 정책의 이해당사자인 국민들의 이해와 협력이 없이는 약보다 독이 되기 쉽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도록, 이참에 건망증에 관한 특별 진료를 한 번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이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