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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승리자, 문재인 정부여 당당하라"

신영복, 김원봉, 홍범도 그리고 대한민국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1/08/26 [07:13]

"역사의 승리자, 문재인 정부여 당당하라"

신영복, 김원봉, 홍범도 그리고 대한민국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1/08/26 [07:13]

▲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미디어이슈=박종완 기자]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이란 영화를 봤거나 알고 있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10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던 희대의 비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독보적 특징은, 학살을 다룬 여느 다큐와는 달리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 학살자’의 시각으로 영화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600만 유대인 학살을 다루는 다큐 영화에서 히틀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랑스럽게 설쳐대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가 많은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자기 손으로만 1000여 명 넘게 살해했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주인공 ‘안와르 콩고’(Anwar Congo)는 ‘빨갱이 사냥의 무용담’을 끝내 자랑스러워했고, 2019년 10월 25일, 78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천재성은 형식상 ‘승자의 역사’를 담담하게 재현하고 기록하면서도, 시대상황과 사회구조적 여건으로 불가피하게 강제되는 ‘인륜의 파괴’보다 잔혹한 개인의 능동성이 더욱 만만치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를 새삼 되새기는 것은,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장군의 유해송환을 둘러싸고 우리 내부에서 벌어진 역사논쟁 때문이었습니다. 장군의 유해송환 과정에 우리 전투기 6대가 출격해 호위를 하고,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한밤중 공항에까지 나가 존경의 예를 다했습니다. 

 

독립영웅이자 소련 볼쉐비키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던 장군의 ‘성대한 귀환’이 공산주의 전통의 계승자인 북한이 아니라 반공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뤄진 것은 얼핏 ‘승자의 역사’라는 통념에 비춰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안와르 콩고가 헐리웃 영화에서 나온 기법까지 흉내 내며 양민을 학살했던 ‘희대의 살인마’였음에도 인도네시아 일각에서 존경까지 받으며 천수를 누렸던 것은 그 때까지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여전히 1965년의 권력구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을 때까지도 그는 ‘승자의 역사’를 향유했던 것이지요.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통설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발끈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시대의 역사기록이 대부분 승자들의 시각에서 이뤄졌다 하더라도, 전체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실관계는 균형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통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여전히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통설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할 것입니다. 

 

아직도 전두환의 민정당 정권이 온전히 계승되고 있다면, 그가 노구를 이끌고 광주의 재판정에 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전제된다면, ‘광주의 추억’이라는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류의 다큐영화에서 그는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헬기에서 기관총을 쐈다는 얘기는 회피하고 부정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하게 내세울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비록 민자당이라는 혼합정당을 통해 YS정권으로 이어졌다지만, 그 시점부터 그들은 ‘패자의 역사’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투사’임을 자신의 정체성(identity)으로 자임하는 YS가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낸 것은 결코 ‘승자의 역사’라는 도식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YS는 군사독재로부터 새로운 ‘승자의 역사’를 써나가면서도, ‘반공’의 문제에서는 여전히 강고했습니다. 골수 보수우파 중 일부에서는 YS가 오늘날 좌파정권의 숙주가 됐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민주화 투쟁의 동지들’에 대한 YS의 배려를 종북주의 팽창의 숙주라고 직결시켜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해석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YS라면 문재인 대통령처럼 김일성주의 기반의 통일혁명당 간첩 출신인 신영복씨에 대해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독립운동가로서 충분한 경력을 가졌지만 결국 북한 김일성정권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김원봉의 이름을, 대한민국 현충일 기념사에서 거론했던 문재인대통령을 YS라면 결코 납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항일 무장투쟁 영웅인 홍범도 장군도 독립투사로선 업적이 분명하지만, 소련 공산당원으로서 레닌의 은덕을 입었던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더구나 이른바 ‘자유시 참변’에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소련군에 의해 죽어나갈 때, 직접 가담했다는 물증은 없어도 최소한 가해자의 편에 서서 이를 방관했다는 증거들은 꽤 많습니다. 

 

‘승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신영복, 김원봉, 홍범도라는 이름이 그동안 ‘패자의 역사’에 가려진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버젓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위대한 사상가로 존경을 받고, 다른 날도 아닌 현충일에 국가영웅으로 거론되며, 대통령이 한밤에 버선발로 뛰어나가 유해를 맞이할 ‘구국의 영웅’으로 부활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승자의 역사’가 180도 바뀌었다는 분명하고도 뚜렷한 증거입니다. 

 

역사가 승자들의 몫이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신영복, 김원봉, 홍범도라는 이름이 역사의 위인으로 복권된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고 보수꼴통, 토착왜구들이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자신들이 ‘승자의 역사’에 속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의 애처로운 넋두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둘러싼 역사전쟁과 사상전에서 좌파는 이겼고, 우파는 졌습니다. 보수꼴통우파들, 토착왜구들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매너를 갖췄으면 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은, 승자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해가는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입니다. 보다 당당하게 승자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홍범도 장군을 현충원에 모시면서 비석에 ‘신영복 필체’를 사용한 것이 민간단체의 주문에 의한 것이라고 변명하지 말고, 당당하게 이 정부의 뜻이라고 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입니다. 

 

반공주의에 찌든 자들이 신영복 선생을 ‘간첩’이라고 떠들어 댈 때, ‘간첩’이란 것은 너희들의 시각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우리의 시각에선 김일성주의든 뭐든 통일조국을 꿈꿨던 자랑스러운 혁명투사라고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을 ‘간첩’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그는 물론 그를 적성혁명가의 좌표로 추앙했던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약산 김원봉을 광복군의 영웅이라고 현충일 대통령 치사에 넣은 것은 절묘하고도 잘한 일입니다만, 유치하게 한미동맹을 부연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궁색했습니다. 그 분이 김일성정권에서 장관을 역임했다하여 독립투사로서의 위업이 손상된 것은 아니라고 당당하게 칭송하는 것으로 끝냈어야지, 왜 승자의 역사를 써가면서 패자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아쉽습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1948년 이승만 주도로 수립된 대한민국과 ‘박정희 신화’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친일 잔당과 친미 사대주의의 적폐를 강조하며 대한민국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승자의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광복절 기념식, 공중파 3사와 몇몇 종편들이 동시 생중계하는 엄숙한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질타하는 김원웅 광복회 회장님은 얼마나 위풍당당했습니까. 그는 비록 군사독재 세력이 승자의 역사를 써갈 때 그들 편에서 잠깐 꿀을 빨았다지만, 이제 그들을 패자의 역사로 몰아넣고 승전고를 울리는 길에 선봉에 섰습니다. 멋진 분입니다. 안와르 콩고는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됐지만, 김원웅 회장님은 역사의 승패가 엇갈리는 시점에서 기민하게(?) 시대변화의 통찰력을 몸소 보여줬다는 점에서 훨씬 존경스럽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정국에서 친일 잔당과 점령군 미군의 폐해를 거론한 것도 ‘승자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당당한 자세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가 집권한다면 최소한 지금 정권보다는 더욱 당당하게 ‘승자의 역사’를 기록해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지 모르고, 충주에서 간첩단을 적발한 국정원 관계자들을 엄중 문책할 필요도 있습니다. 눈치 없는 국정원의 대공기능을 하루빨리 경찰이 전담하도록, 관련법의 3년간 유예조항을 폐지해야 합니다. 막강한 입법권력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여정의 호통에 맞춰,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주문한 74명의 국회의원들은 당당하게 승자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인들입니다. 빠짐없이 청와대로 불러 아낌없이 격려해야 마땅합니다. 속으론 기특해하면서도 겉으론 아닌 척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빛바랜 ‘반공 타령’으로만 역사전쟁에서 다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무리들이 반대편의 주력군으로 설쳐대는 한, 보무도 당당하게 적성혁명의 선배 동지들을 떠받들며 대한민국의 뿌리를 교체하려는 사람들은 무조건 필승입니다. 친일파 장사도 여전히 쏠쏠합니다.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충성도에서 신영복 선생을 능가하는 이석기도 귀감으로 삼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보다 당당하게 승자의 역사를 써내려갈 것을 희망하는 이유는 보수꼴통과 토착왜구들이 아직도 승자인 척 거들먹거리는 꼴을 더 이상 보기 싫기도 합니다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충정 때문입니다. 패배자들이 아직도 승자인 줄 착각하고, 승자들이 승자가 아닌 척 내숭을 떨어서는 이 나라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과 부끄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면을 버리고 제대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 전쟁’에서 자신의 정체를 착각하거나 위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희망적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난 8.15 경축식의 쾌거처럼 김원웅 동지를 앞장세우고, 대통령께서 끔찍이도 존경하는 신영복 김원봉 홍범도의 거룩한 이름을 가열 차게 칭송하며 힘차게 전진하는 문재인 정부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비록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다시금 승리하기를 갈망하기에 그 대열에 함께하지 못함이 안타깝습니다만, 승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갈수록 솔직해지려는 문재인 정부의 모습에는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오늘입니다.    

 

 

 

 

 

 

 

 

 

 

 

    

 

 

 

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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