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준비된 포퓰리스트 이재명을 학습하라"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1/02/16 [09:28]

"우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준비된 포퓰리스트 이재명을 학습하라"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1/02/16 [09:28]

▲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갈수록 ‘포퓰리즘 논쟁’이 가중되는 양상입니다. 서울시장 보선에 나선 유력 후보들의 공약 대결은 물론이고, 이른바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사람들도 ‘기본소득’ 등의 쟁점을 놓고 때 이른 신경전에 돌입한 모습입니다.

 

2019년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정부여당의 복지예산을 삭감하면서 ‘악성 포퓰리즘’과의 전쟁을 선언했던 나경원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후보가 “서울서 결혼·출산하면 1억1700만원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선언하고, 황당한 포퓰리스트의 대명사였던 허경영씨에 비유되자 ‘나경영’으로 불러도 좋다고 배짱(?)을 과시한 것은 꽤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현재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되는 ‘포퓰리즘 논쟁’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론’을 둘러싼 여권내부의 논란입니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해, 잠재적 경쟁자들인 이낙연 여당 대표와 정세균 총리, 그리고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 등이 비판적 공세에 나섰습니다.

 

‘기본소득론’은 현실성과 당위성을 떠나, 그 자체가 우리 정치권이 판에 박힌 여야 대결이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생산적 정책경쟁의 어젠더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 강령에 ‘기본소득’을 명시한 것도 얼핏 보수정당의 기본철학과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보수 우파적 기본소득제’ 논의의 역사가 더 길다는 점에서 궤도이탈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한, 여권 경쟁주자들의 비판이나 야당 일각의 비판 중에서 제대로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평가할 만한 얘기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려운 듯합니다. 판에 박힌 ‘재정부담론’이나, 외국의 선례 등을 문제 삼는 수준으로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한 나름의 연구나 숙성도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입니다.

 

정치인도 아니고 온라인 낭인에 불과한 ‘조은산’ 정도가 그나마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론에 대해 나름의 지적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은 정부가 빈곤층에 현금을 지원하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정책으로 유명했고, 이것은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으로 지목되면서도 브라질의 빈곤률 저하나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성공적 포퓰리즘 정책’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지사가 룰라를 롤모델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조은산은 룰라의 ‘친기업정책’과 ‘조건부 현금지원’을 강조하면서, 이재명지사의 기본소득론은 룰라 방식의 포퓰리즘과는 다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조은산은 이 지사에게 ‘조건부 기본소득제’를 대안으로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조건부 기본소득제’는 기본소득제의 본질인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이라서 사실상 ‘이재명식 기본소득제’를 포기하라고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이재명 지사에게 ‘기본소득 논쟁’은 꽃놀이패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그가 중앙 정치권의 핫이슈를 선점한 것은 물론, 여론조사 지지율의 고공 행진을 바탕으로 포퓰리스트로서의 진가를 발휘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지와 금융에 대한 이재명식 ‘기본 시리즈’는 계속 확장될 것이며, 당분간 경쟁자들은 이슈 싸움의 수동성을 면키 어렵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 논쟁에서 소외된 채 주변부로 밀려나있는 보수 야권의 신세입니다. 보수 야당이 대놓고 ‘판 돈’을 키워 ‘포퓰리즘 전쟁’에 가세하자니 눈치가 보이고, 늘 하던 대로 재정건전성을 앞세워 좌파적 포퓰리즘과 맞서자니 당장의 ‘표심’이 걱정인,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딱한 처지에 내몰린 셈입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부산에 가서, 가덕도신공항에 ‘한일 해저터널’을 더하고, 나경원 예비후보가 ‘나경영’을 불사하며 ‘1억1700만원 지급’을 터뜨린 것은, 나름의 고육지책이겠지만 급조된 것이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이 당 강령에 ‘기본소득’을 명시했다지만, 이재명지사의 조롱대로 정교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당 지지율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국민의힘이 능동적으로 점수를 딴 것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포퓰리즘 경쟁 측면에서는 ‘원칙’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국민을 현혹시킬 재주도 없었던 셈입니다.

 

디지털 정치문화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의 확대를 수반한다고 합니다. 대중들이 보다 많은 정보를 취득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다변화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의 확대는 표면상 민주주의 확대와 같은 개념입니다. 사실상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같이 가는 것이고, 그래서 포퓰리즘의 대항마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얘기합니다.

 

벨기에의 급진주의 학자인 샹탈 무페는 ‘우파 포퓰리즘에 맞서 싸울 좌파 포퓰리즘의 필요성’을 주창한 바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좌파 포퓰리즘은 계급투쟁의 본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들을 그 원칙에 녹여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북한의 대중노선과 통일전선전술을 연상케 하는 측면도 있지만, 권력을 좌우하는 선거 국면에서 포퓰리즘이 불가피하다면, 원칙을 바탕으로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제대로 착근할 수 있는 정교한 좌파 포퓰리즘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라고 이해됩니다. 

 

어찌 보면 이재명 지사는 현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서 가장 준비된 ‘좌파 포퓰리스트’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룰라와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고 그가 설파하는 ‘기본시리즈’에는 재정파탄을 도외시한다는 비판을 넘어설 정도로, 서민대중의 현실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숙고가 담겨있는 것처럼 잘 포장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금 살포자’로 지탄받을수록 그는 삶에 지친 서민 대중들로부터 환영받는 ‘좌파 포퓰리스트’의 성공신화를 쓸 수도 있어 보입니다.

 

북부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줏가를 올리고 있고, 남부 유럽에서는 좌파 포퓰리즘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일시적 유행이라기보다 신자유주의 퇴조 분위기에서 탄생한 좌우 급진주의의 새로운 유형이요, 시대의 반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포퓰리즘은 관념적으론 부정될지 몰라도, 현실정치에서는 필요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차피 포퓰리즘이 필요악이라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침해하지 않고도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건강한 우파적 포퓰리즘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재정파탄형 포퓰리즘 등을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고 한다면, 포풀리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포퓰리즘 맞춤형 무기’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이재명 지사가 주도하는 ‘좌파 포퓰리즘’에 맞설 경쟁력 있는 ‘우파 포퓰리즘’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기득권층을 부패한 무리로 싸잡아 비난하면서 민중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정치인은 포퓰리스트로 분류할 수 있다” 포퓰리즘 연구학자로 유명한 카스 무데의 진단입니다. 이재명 지사가 룰라를 언급하면서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적개심을 명시하고 나선 것 등은 이러한 포퓰리스트 감별기준에 딱 들어맞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정문제와 더불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한계와 문제점은 널려있습니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권력계급이면서, 어딘가에 ‘기득권 카르텔’이 존재하며, 그들이 만악의 원흉이라고 대중을 선동하고, 권력의 실패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권력형 좌파 포퓰리즘의 전형적 특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선거판에서 온통 ‘좌파 포퓰리즘 따라잡기’ 경쟁만 벌어진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다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균형과 올바른 미래 설계를 위해,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테제는, 우리사회에서 역설적으로 ‘우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깃발로 대체되어야 할 듯합니다. 

 

기본소득제를 실현한 선진국들의 선례가 없다는 비판에 대해, 이재명 지사는 ‘사대주의적 열패의식’이라고 맞받으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과 창조력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 새역사 창조’ 등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대응이었습니다. 이 지사는 ‘정치적 수사(修辭)’에서도 우파 포퓰리즘의 근거들을 선점하려 하는 듯합니다. 

 

차기 대권이든, 당장의 서울 부산 광역단체장이든 현명한 국민들은 후보들의 ‘말과 약속’에 마냥 현혹되지는 않습니다. ‘현금 살포’에 매달려 국가 재정을 파탄내고 미래세대를 사전에 약탈하는 절도범들에게 위대한 국민들이 쉽사리 넘어간다고 보는 것은 대단한 결례입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좌파 포퓰리즘’은 ‘현금복지 확대와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야금야금 확장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만큼 우리 민초들의 현실이 어렵다는 것이고,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대책을 구사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재명류의 ‘좌파 포퓰리즘’이 일정 수준의 정교함도 갖춘 것으로 평가됩니다.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칼 슈미트)이고, 포퓰리즘이 인민과 ‘인민의 적’들 사이의 경계선을 규정함으로써 동력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오로지 ‘빨갱이’ 기준 하나로 피아를 구분하는 우파들의 구시대적 포퓰리즘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뉴 노멀에 부합될 우파 포퓰리즘의 새로운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럭저럭 방어 가능한 수위의 어정쩡한 선심정책을 내놓고 ‘나는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뒷전에서 강변하기보다는, 차라리 치밀한 설계를 바탕으로 대중의 공감을 극대화시킬 제대로 된 ‘포퓰리즘’을 당당하게 구사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 등에 의한 민초들의 고용 위기와 생존의 불안을 제도적으로 저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우파적 정책대안들을 고민하고, 이를 ‘우파 포퓰리즘’으로 설득력 있게 치장할 수 있어야 비로소 ‘좌우 포퓰리즘’의 대등한 대결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 퍼주기 포퓰리즘’에 ‘선순환식 퍼주기 포퓰리즘’이 양적으로 밀린다면, 그것은 고민의 부족이요 정책역량의 결핍을 의미할 뿐입니다.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도 진정성만 전달될 수 있다면 우파적 포퓰리즘의 유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보수야당의 지도자급 인사들에게서 보수우파적 원칙들을 바탕으로, 정교한 프로그램과 진정성을 결합시킨 우파 포퓰리즘의 정수를 보고 싶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요?

 

‘좌파 포퓰리즘’이 일방적으로 질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이 ‘룰라의 나라’가 아닌 ‘차베스의 나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기에, 적어도 지금은 진영논리를 떠나 ‘우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깃발을 한껏 흔들어 주고 싶은 오늘입니다.  

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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